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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야기

[천자춘추] 까치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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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rimh
  • 조회 308
  • 입력 2021-11-2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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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춘추] 까치와 매

정년을 50여일 앞둔 늦가을. 12년을 넘게 오가던 숲을 가슴에 새기고, 오랫동안 기억의 통장에 넣으려 세세히 살펴본다. 오색단풍을 뽐내던 갖가지 나무들은 단 하루 내린 비와 새벽에 분 바람으로 벌거숭이가 되고 제 색을 내지 못한 이파리들은 서로 엉키어 가을비를 원망하기보다는 그렇게 엉클어진 것이 숲의 생체시계라 일깨워준다.

혹 떠남을 안 기러기라도 단체 비행을 할까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매 한 마리가 저공비행을 하다가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공중제비를 하듯 치솟기를 두어 차례 하고 있다. 매의 출현과 멋진 비행을 바라보고 있을 때 평소와 달리 까치의 소리가 굉음을 토한다.

그리곤 순식간에 까치 십여 마리가 매를 둘러싸자 매는 위로 치솟다 곤두박질 치고 유선을 그리며 동산 주위를 뱅뱅 도는 사이 까치들은 수십 마리로 불어나 가쁜 날갯짓을 한다.

참나무와 소나무에 앉아 경계를 서는 무리, 매의 뒤를 쫓는 무리, 주변을 맴도는 무리, 마치 텔레비전의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이 현실로 나타난 형국이니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5분 정도 펼쳐진 매와 까치의 치열한 기 싸움에 매료되어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매는 기에 밀려 점점이 사라진다. 혼쭐이 나 달아나고 만 것이다. 이 싸움을 보면서 까치들의 움직임에 나름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의 군대처럼 초병과 돌격대, 지원병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매가 꽁무니를 뺀 후 무슨 일이 일어날까 관심은 더 커진다. 매를 쫓아가던 까치들은 돌아오고 언제 모였다는 듯이 뿔뿔이 흩어지고 숲은 이내 평온을 찾는다.

까치와 매의 힘겨루기에서 매의 날렵하고 여러 가지 비행하는 모습을, 까치들의 평범한 날갯짓 속에 빠른 비행을 넋 없이 바라보는 구경꾼이 되었다.

먹이사슬에 따른 생존경쟁 아님 반대로 생존경쟁을 위한 먹이사슬. 어떤 것이 우선 된다 하더라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힘의 논리가 아닌 정신의 논리로 약자가 강자를 물리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는 인간의 약육강식 구경꾼으로 돌아간다.

한철수 시인•구지옛생활연구소장

출처: 경기일보 오피니언 / 천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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