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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문화인물

구리의 북소리, 윤덕진 악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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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rimh
  • 조회 171
  • 입력 2021-11-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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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에서 활동하였고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이었던 윤덕진의 전통 북 제작 이야기.

윤덕진 악기장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북을 만들어 온 장인이다. 경상남도 하동 출신인 윤덕진은 북 만드는 장인인 아버지를 도와 북을 만들다 잠시 경찰에 투신하기도 했으나 이후 평생을 북 만들기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북에 대한 사랑이 윤덕진을 1991년 5월 중요 무형 문화재 제63호 북 메우기 기능 보유자가 되게 하였다. 북 메우기 기능은 1995년 3월 16일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으로 통합되어 윤덕진은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인 악기장이 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개회식과폐회식에 사용된 '용고'를 비롯해 청와대 앞에 있는 '문민고' 등이 있다. 장남인 윤종국을 비롯한 4형제도 부친의 영향을 받아 '전통 북' 제작으로 전통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은 윤덕진 악기장을 구리시의 문화 인물이 되게 하였다.

[북의 연원과 의미]

북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나 추수 후 벌이는 잔치에서 나무통을 두드리는 것이 시초가 되었다가 가죽을 이용한 것으로 발전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북은 신성한 하늘의 소리로 인식되었으며, 제사 등의 행사를 비롯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종교나 신앙에서 북은 단순한 악기가 아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불교에서는 절에서 치는 큰북 소리를 중생들을 일깨우는 부처의 소리로 인식하였고, 힌두교에서는 창조의 소리를 들려주는 매개체로 북을 사용하였다. 한편, 시베리아 샤먼들은 북이 신성한 힘을 주는 강령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북의 역사]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북을 사용했다. 고구려 안악 3호 고분 벽화 주악도(奏樂圖)와 행렬도(行列圖)에는 각각 입고(立鼓)와 담고(擔鼓)라는 북이 그려져 있다. 백제 때에는 북·공후 등의 악기가 있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세 가지 현악기와 세 가지 관악기인 삼현 삼죽(三玄三竹) 음악에 대고(大鼓)를 함께 사용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장구·교방고·진고·입고 등이 궁중 음악에 쓰였으며, 이외에도 진고·입고·비고 등 여러 종류의 북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중앙과 지방 관서에 '풍물장'이라는 악기 만드는 장인을 두도록 하였고, 오늘날 쓰고 있는 장구가 민간 음악에 사용되었으며, 농악의 발달과 무용의 다양화로 소고나 소북 정도가 성행하여 근래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군기시(軍器寺)에는 군사적인 목적의 북을 만드는 고장(鼓匠)이 있었다.

[중요 무형 문화재 악기장]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이란, 전통 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 '악기 조성청'이라는 독립적인 기관 안에 '풍물장'을 두어 궁중 악기를 제작하였다. 해방 이후 서양 음악이 발전하면서 국악이 설 자리를 잃었다. 그에 따라 국악기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어 국가에서는 전통 악기를 만드는 공예 기술 중 현악기는 1971년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으로 지정하였다. 북을 제작하는 기술은 1980년 중요 무형 문화재 제63호 북 메우기로 별도 지정하였다가, 1995년 3월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으로 통합하였다. 북 메우기란 가죽을 북통에 씌우는 일을 말하는 것인데, 이 일이 북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북 만드는 기술 전체를 일컬을 때 '북 메우기'라 부른다.

[윤덕진 악기장과 주변 환경]

고(故) 윤덕진 악기장은 1926년 3월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향교리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윤억판, 아버지 윤랑구에 이어 3대째 북을 만든 장인이다. 하동은 본래 경상남도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지리산 남쪽과 남해를 사이에 두고 섬진강이 흐르는 중요 교통 요지로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지형이다. 하동에서 일찍부터 북이 만들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지리산에 좋은 목재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주로 옛날에는 통북을 많이 만들었다. 통북이란 북 테를 조각으로 만들지 않고 나무통을 이용하여 만드는 방법이다. 통북의 재료로 쓰이는 피나무, 물푸레나무, 춘향목[소나무] 등이 지리산에서 많이 나온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하동의 장에 황소가 많이 나오는데, 전국에서도 하동 지방의 쇠가죽이 북 만드는 재료로서 가장 질이 좋기 때문에 예부터 윤씨 집안은 하동에서 터를 잡고 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경상도 지방보다는 전라도 지방이 소리북이나 농악이 성하였으므로 북의 소비성을 따라서 윤덕진 악기장이 7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 전라남도 순천시 동해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윤덕진 악기장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도와 북을 만드는 중에 '여수 순천 사건'이 일어났는데, 불행히도 아버지가 유탄에 맞아 돌아가시자 생계가 어렵게 되었다. 이후 윤덕진 악기장은 북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1950년 경찰에 투신하였으나 1954년 공비 토벌 작전에 참가하였다가 팔 부상을 입고 퇴직하였다. 이후 다시 북 만드는 일을 계속하였는데, 1961년 35세 되던 해에는 전국적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일반인들의 북에 대한 관심도가 없어 사업이 잘 안 되자 서울로 옮길 것을 결심하고 영등포 신길동에 터를 잡게 되었다. 서울 신길동에서 2년 동안 북을 만들다가 다시 이문안 마을로 옮겨 5년 동안 거주하였다. 1981년에 구리시 교문동 딸기원 마을로 이사를 하여 20여 평의 공방을 두고 북을 제작하였다.1989년 경기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고, 1991년에는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 창현리로 옮겨 '한국 전통북 전수소'를 개설하여 후계자를 양성하였다. 65세 되던 1991년 5월 중요 무형 문화재 제63호 북 메우기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북 메우기 기능은 1995년 3월 16일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으로 통합되었다. 1994년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89번지에 공방을 옮겨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다. 기능 보유자가 된 이후 전통적인 방식으로 각종 북을 제작하면서 활동하다가 2002년 뇌출혈로 별세하였다. 현재 윤종국, 윤신 두 아들이 중요 무형 문화재 제42호 악기장 전수 교육 조교로 인정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요작품]

고(故) 윤덕진 악기장이 만든 대표적인 북으로는 민속촌에 있는 큰북인 '대고'와 국립 극장의 '용고',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사용된 '용고', 청와대의 '문민고' 등이 있다. 특히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에서 사용된 윤덕진 악기장의 작품은 총 1,100개가 넘는다. 현 구리시청 정문 앞에 설치되어 있는 '고구려 북'도 윤덕진 악기장과 아들이 만든 가족 작품이다. 윤덕진 악기장과 가족이 만든 북의 종류는 24가지이다. 그중 대표적인 북을 소개하면 줄북, 고장북, 장구 등이 있다.줄북은 몸통 부분에 줄을 매서 만드는데, 줄이 늘어나 소리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쐐기를 조이기 때문에 '쐐기북'이라고도 부른다. 북은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로 통을 만들고, 줄은 마른 가죽을 물에 하루 정도 담근 후 썰어서 만든다. 이때 궁판에 1치[약 3.03㎝]나 1치 5푼[약 4.53㎝] 정도의 넓이로 구멍을 뚫어 물기가 있는 상태로 양쪽 궁판을 서로 엇갈리게 당기면서 줄북을 메워 나간다. 줄을 당길 때 궁판의 가죽을 직접 뚫어 당기면 찢어지므로 테 가장자리에 굵은 철사를 넣고 끝을 한 겹 접으면 줄을 아무리 당겨도 찢어지지 않는다. 아울러 줄북에 철못을 쓰면 소리가 변질되므로 사용하면 안 된다. 고장북은 판소리의 반주에 사용하므로 소리북이라고도 한다. 북은 통과 가죽으로 구성된다. 통은 굵은 소나무를 통째로 사용해서 안쪽을 파내야 하는데, 요즘은 굵은 소나무가 적어 일정한 두께의 쪽을 여러 쪽 붙여서 만든다. 가죽은 질과 두께, 부위에 따라 소리가 좌우된다. 2~3년 된 쇠가죽을 무두질하는 게 핵심적인 기술이며, 윤덕진 악기장의 솜씨가 여기서 드러난다. 무두질은 몇 단계를 거치는데, 우선 표면의 털을 제거하기 위해 석회물에 담그며, 기름기를 제거하고 닭똥이나 된장 물에 담그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다시 이것을 대패질하여 알맞은 두께로 만드는 복잡한 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장구는 양쪽 머리가 크고 중간 허리가 잘록한 형태를 하고 있어 '세요고(細腰鼓)'라고도 부른다. 장구는 오동나무나 버드나무 통의 양쪽 궁판에 개가죽과 노루 가죽을 각각 씌워 만든다. 왼쪽은 손이나 궁굴채로 쳐 궁판이라 하고 오른쪽은 열채로 쳐 채판이라 부른다. 장구는 춤이나 소리의 반주 악기로 쓰이는데, 리듬의 구실을 도맡아 아악을 비롯하여 속악, 극악, 농악, 민요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인다. 장구의 양편을 동시에 치는 것을 쌍(雙)이라 하고, 열채로 채편만 치는 것을 편(鞭), 왼손이나 궁굴채로 북편만 치는 것을 고(鼓), 그리고 열채로 잠시 치고 굴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요(搖)라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집필자 : 도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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